[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7)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5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상)

강세종
2019-04-04
조회수 403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7)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5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상)

삶의 순간마다 손을 뻗어 주님의 손을 잡자

많은 분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늘 하느님과 함께 현존하는 그 삶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 삶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자마자 갑자기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성당에 나오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실직을 당해 신앙생활에 소홀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통은 평신도들의 신앙을 흔들리게 합니다.

그런데 고통이 근본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면 거기엔 고통보다 더 높은 그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왜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고통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 분이 왜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예수님이 받으실 만한 고통의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

의인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예수님 탄생 이전까지 구약성경의 가장 큰 주제였습니다. 그 해답이 예수님에 이르러 주어집니다. 고통보다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완성된 모범을 보이십니다.

의인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의인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해답입니다. 악인은 고통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손해 안 보려고 극악하게 발버둥 치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전가합니다. 자연히 고통을 받을 확률이 낮아집니다. 의인이니까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고통은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구별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뿐 아니라 부자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부자가 행복할 것 같은가요? 고통이 전혀 없어 보이는가요? 권력자가 행복할 것 같은가요? 오히려 권력 있는 자가 권력 없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내면의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것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고통과 관련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입니다. 계시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돕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고통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두통이든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이든, 빈정거림을 받든, 그 고통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돕습니다.

또 신앙적 차원에서 고통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속죄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고통을 받으신 이유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수많은 인간이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평신도는 이러한 진리를 믿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평신도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은 성당에 와서 온종일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평생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직장에도 계시고, 학교에도 계시고, 이웃의 표정 속에서도 살아 계십니다.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는데 옆에 어떤 사람이 와서 길을 물어본다면 그 사람의 눈빛 속에도 하느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들에 핀 꽃 한 송이에도, 기름 잔뜩 묻은 차량 정비공의 손에도 하느님이 계십니다. 세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항상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늘 우리 옆에 계시는 분 

하느님 빼고 학교에 가고, 하느님 빼고 직장 일을 하고, 하느님 빼고 이웃과 대화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느님은 사막에 가야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지에만 존재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 옆에 서 계십니다. 평신도는 간단히 손만 뻗어서 그 손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을 읽다가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네. (시편 19,1-4)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4.07 발행 [1509호]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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