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26)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7 - 겸손

강세종
2019-06-06
조회수 3489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26)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7 - 겸손

주님 없이는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기에

말의 홍수입니다. 텔레비전에도, 인터넷에도, 라디오에서도 좋은 말들이 넘쳐납니다. 수많은 이가 사랑, 치유, 위로, 평화, 감사, 용기, 행복을 말합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이 영혼의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쟁터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위생병이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생병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신문에서 치유와 행복에 대한 말이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빠져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겸손’이 그것입니다. 사실 이 단어를 빼면 평신도 영성은 모래성 위의 집입니다. 기둥이 없는 집입니다. 겸손은 행복의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든든한 기둥입니다.

모든 것의 주어는 ‘나’가 아냐 

그렇다면 겸손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겸손이란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이 나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많지만 반대로 좋은 일도 많이 생깁니다. 사업이 의외로 번창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뜻밖의 진급을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결혼한 후 예쁜 아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 아기는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상쾌함이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 이것이 겸손입니다.

겸손은 나를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신념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당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게 과연 무엇이 있는가. 당신이 세상에 태어날 때 과연 무얼 가지고 태어났느냐”고 질문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합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압니다.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꾸짖으셨습니다.(마태 23,1-36 참조) 그 이유는 바리사이가 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으며 모든 선한 행위를 드러내고 뽐냈기 때문입니다. 바리사이들은 나름대로 단식도 많이 하고 율법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처럼 생각하고, 스스로를 드러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평신도들의 모습은 어떤가요? 내가 잘해서, 내가 잘나서, 내가 똑똑해서 성취했다고 말하지 않는가요? 주어는 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주어는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신 것입니다. 

요즘 1등 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1등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아니, 삼위일체이시니까 1, 2, 3등이 모두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내가 1등이 되고 싶어 합니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세 개는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그분들이 차지하시는 게 맞습니다. 그것을 내가 왜 차지하려고 합니까.

하느님께 모든 것을 돌리는 것

겸손은 일반적으로 이웃 앞에서 거만하지 않게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모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이 겸손입니다.

원래 낮은 존재인데 겸손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교만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아는 것, 모든 열매가 하느님 것임을 아는 것,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겸손은 진리를 묵묵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만약 훗날 한국 교회에 든든한 평신도 영성의 집이 지어진다면, 그 집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의 이름은 ‘겸손’일 것입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6.09 발행 [1518호] 사목영성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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