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9)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7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하)

강세종
2019-04-18
조회수 3664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9)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7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하)

귀에 못이 박이게 들어 무감각해진 건가

“주님은 사랑이시다.” “주님은 거룩하시다.” “주님은 늘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고 계시다.”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많이 들어본 말일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예비신자 단계에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을 말일 것입니다. 이런 말을 교회에서 많이 하는 것은 그 말이 참으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은 2000년이 지나도 힘을 잃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는 인간이 나약합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말씀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나약한 일상 속에서 

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지오 마리애 회합도 늘 반복됩니다. 소공동체 모임도, 교리교육도, 강연도 반복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깊은 차원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평범하고 나약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진리의 말씀이나 전례, 각종 회합이 의미가 없습니다.

밥을 먹는 것으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늘 밥을 먹습니다. 하지만 깊은 차원의 신앙에 머무는 사람에게 밥은 생명의 빵이 됩니다. 밥을 먹을 때마다 하느님 안에 머물며 감사를 체험합니다. 하지만 밥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연적 차원, 본능적 차원의 삶을 사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 그리고 하느님은 늘 은총을 베풀고 우리와 함께 머무신다는 말씀이 너무 많이 들어서 식상하게 들리십니까. 그리고 의미 없게 스쳐 지나가는 말씀에 불과합니까. 그럼에도 이 말씀들은 참으로 힘이 있어서 우리가 조금만 깨어 있는다면 참 빛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이러한 거룩하고 신성한 표현들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이 주는 새로운 의미로의 초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구두를 수선하는 사람은 구두를 수선하는 과정에서 성경의 의미를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꽃가게를 하는 사람은 꽃꽂이 하나를 통해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발소 주인도 마찬가지이고, 공무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부인,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 기업인, 교수 등 사회의 책임을 지닌 이들은 더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같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선, 하느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평신도가 주님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갈망하지 않고 자신보다 돈이 많은 사람, 권세가 높은 사람을 갈망합니다. 나 자신의 문제는 주님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하십니다. 

뉴스를 볼 때, 또 세상의 어떤 정보를 접할 때 그것이 주님보다 더 나를 강하게 사로잡으면 안 됩니다. 내 안에 주님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이 들어와도 주님의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온통 세상의 것이 지배하고 있으니까 삶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사로잡고 있으면 세상살이가 전혀 힘들지 않게 됩니다.

주님의 현존이 더 중요 

주님보다 현실의 사건이 나를 더 사로잡고 있습니다. 현실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실이 중요하지만, 주님의 현존은 더 중요합니다. 주님 없는 가운데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사건들에 잡혀 있으니까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삶이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많은 평신도가 지금도 자신 안에 계시는 주님을 잊고 삽니다. 안타깝습니다. 세상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건 말건, 나는 내 삶을 결정짓는 주님과 함께 살면 됩니다.

침묵 속에서 참기도를 한번 해 보십시오. “주님 당신은 길입니다.”“주님 당신은 평화입니다.”“주님 당신은 진리입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어떤 평화로 가야 할지, 세상 뉴스와 사건들을 접할 때 무엇이 진리인지 알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살아갈 때, 우리 삶 안에 주님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복음을 세상에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이 틀 때 떠오르는 태양은 놀라운 도구가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한다.”(집회 43,2)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4.21 발행 [1511호]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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