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8)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9 - 기도(하)

강세종
2019-06-20
조회수 99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8)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9 - 기도(하)

기도가 잘되지 않는다고요? 

자녀들이 공부에 지쳐 힘들어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좀 쉬어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쉬라는 말이 1년 365일 매일 쉬라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힘드니까 조금 쉬어가면서 공부하라는 말일 것입니다. 

때론 열심히 달리고 때론 물러서야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가 세상에 대한 생각과 관심을 모두 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매일 성체 앞에 앉아서 기도만 할 수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달리고, 때로는 멈춰서 물러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다 끊고 산에 올라 두 달 동안 기도만 한다면 그 가정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입니다. 인격적인 하느님이시고 역사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평신도의 일상 삶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십니다. 평신도에게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찾아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바위 위에 앉아 기도하다가도 사나운 맹수가 오면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다가 추우면 몸을 따뜻하게 해 주는 든든한 옷을 돈으로 사서 입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이러한 전제하에 말합니다. “끊어야 합니다!” 기도에 있어서 분명한 것은 세속과 끊고 살아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시기에는 과감하게 모든 것을 끊어야 한다. 여기서 끊는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종종 벽에 부딪힙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 길이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합니다. 만약 인간 능력으로, 인간 정신으로, 인간의 입으로 하느님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면 그 하느님은 이미 하느님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하느님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이 아닌 인간으로서는 하느님을 설명하고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런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현혹하는 것이 바로 사이비 종교입니다.

그래서 이런 하느님께 기도로 접근하는 방법으로는 부정적 방법이 때론 효과적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을 알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통해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가 하느님께 도달하는 방법은 하느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말 신비롭고 완전한 분이기 때문에 제가 하느님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저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신비를 알기 힘듭니다. 그래서 완전하신 하느님께 제가 흠숭과 경배를 드리고 찬양과 찬미를 드립니다. 저하고 똑같은 분이라면 제가 이렇게 흠숭과 경배도 안 드리고 찬양과 찬미도 안 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모르는 정말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제가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흠숭도 드립니다.”

그럼에도, 이 지상의 삶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보기를 원한다면 하느님을 향해 사랑을 고정시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갑자기 하느님을 딱 만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설거지하는 것, 청소하는 것, 아침에 일어나 이 닦는 것, 공부하는 것 모두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침묵 속에서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면서 이런 것들을 한다면 삶을 하느님 안에서 종합하는 진정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설거지도 청소도 기도가 돼 

삶이 기도입니다. 삶이 기도가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의 삶을 완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하느님께서 그 능력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기도의 아마추어로 남아 있을 것입니까. 우리는 삶으로 바치는 기도의 프로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6.23 발행 [1520호] 사목영성 기사 전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