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13) 한국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1 : 현대를 살아가는 평신도의 어려움

강세종
2019-03-07 09:14
조회수 186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13) 한국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1 : 현대를 살아가는 평신도의 어려움

평신도 영적 생활의 가장 큰 걸림돌은 세속 문화

많은 평신도가 영적인 삶을 희망합니다. 그 삶이 가장 숭고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많은 이가 고백합니다. 그 영적인 삶을 살아내기가 참으로 어렵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어렵습니다. 영적인 삶은 하느님이 이미 거저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쉽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자유의지의 나약함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당에 다니면서도 시기하고 질투하고 험담합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게 많은 분이 하느님을 따른다면서도 하느님을 버리고 살아갑니다. 하느님만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도 버리고, 이웃도 버립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특히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로 신앙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신앙적 삶을 막는 장애물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들이 우리의 신앙적 삶을 막아서고, 방해합니다. 평신도들은 그 장애물을 잘 알지 못합니다. 왜냐고요? 현대사회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을 만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중 하나가 세속 문화입니다. 

세속 문화가 신앙의 삶을 방해합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농업 목축업 어업이 주류였습니다. 삶이 단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복잡한 사회가 됐습니다. 수많은 정보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정보로 인해 우리 각자는 나름대로 머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가득 차 있으니 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안다고 생각하다 보니 자기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자기가 가진 정보가 모든 것인 양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잘되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끊임없이 다툽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는 멀티미디어의 사회로서 수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고 그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그 정보를 이용하여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속 문화가 현재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 삶 에 개입하시기 어려운 환경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느님 뜻을 먼저 구하고 찾기 이전에 세속 정보를 먼저 접하게 되고 그것에 모든 것을 의존하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평신도 그리스도인들 역시 세상의 흐름에 같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속 문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상ㆍ감정ㆍ행동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도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과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 가운데 세속의 삶이 어쩌면 더 매력 있고 쉬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삶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힘듭니다.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참 행복의 길이고 진리의 길임에도 많은 평신도는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서 서로 한발씩 걸쳐놓고 그나마 한 발을 하느님 쪽으로 들여놓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멘토를 찾기 힘듭니다. 평신도들은 성직자와 수도자에게서 그 모습을 찾고 본받기를 원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세속적인 삶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본받고 따르려고 합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더 쉽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속 문화는 평신도들이 영적 삶을 살아가기에 쉽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평신도가 세상 안에 살아가면서 자기 신분과 위치를 분명히 알아 자기 정체성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신앙인의 모델이 많이 생겨나야 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평신도들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40년 미만의 신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신앙생활의 경륜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신앙의 깊이가 깊지 않아 뿌리를 내리기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가 먼저 복음화돼야 

복음적 삶을 실천하는 많은 사람이 생겨나야 합니다. 형식적이고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내적 쇄신을 통한 새로운 변화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평신도들은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복음적 삶을 통해 얻어지는 참 기쁨과 평화, 그 가치를 잘 모릅니다.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합니다. 평신도들은 신앙인의 모델이 성모님이시라는 것을 알지만, 현대사회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 하고 그분을 모델로 삼고 닮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 속에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것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 중요한 것은 한 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발치에서 먼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세속 문화의 복음화에 관하여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3.10 발행 [1505호]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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