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5)제언 - 제가(濟家) : 청소년·청년 평신도의 복음화

강세종
2019-10-31
조회수 64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5)제언 - 제가(濟家) : 청소년·청년 평신도의 복음화

청소년·청년들에겐 가르침보다 영적 체험 필요

한국 교회는 1989년부터 5월 마지막 주일을 보편교회를 따라 ‘세계 젊은이의 날’로 지내오다, 1993년부터 독자적으로 ‘청소년 주일’로 바꿔 지내오고 있습니다. 교회가 전례력에서 특정 주일을 제정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해서 대충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 주일이 제정됐다는 것 자체가 교회가 청소년 문제의 중대함을 인지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 나아가 청소년 복음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각오와 노력의 방향을 재점검해 볼 시기가 됐습니다. 그동안 청소년ㆍ 청년 사목에 대한 접근은 대부분 ‘반성’이라는 원론적 차원에 초점이 맞춰져 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한 가지 측면에서만 이뤄졌습니다.

본당 예산의 우선순위 

실제로 교회는 청소년ㆍ청년 복음화를 위해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신앙 활성화 방안과 교리교육 효율화를 위해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고, 관련 교재와 프로그램들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일선 본당에서도 예산의 우선순위는 늘 청소년ㆍ청년입니다.

하지만 청소년ㆍ청년 복음화는 여전히 난망한 수준입니다. 교회 구성원 중 교적에 등록된 청소년은 20대와 30대를 합쳐 전체 교우의 31%에 해당합니다.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교회 내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숫자는 미미합니다. 신앙에 대한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물론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마저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청소년, 청년들이 교회를 떠날지 걱정이 앞섭니다.

이처럼 청소년ㆍ청년 복음화가 아직도 문제가 된다면 이제는 시각을 달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육은 피교육 대상자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피교육 대상자를 변화시키고, 복음화를 함양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청소년, 청년들이 원한다고 밴드를 만들어 주고, 그들이 원한다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것이 진정한 신앙 교육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결과가 어떻습니까. 

청소년ㆍ청년 복음화를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주지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실재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그동안 교회는 청소년, 청년들을 ‘함께함’이라는 고상한 구호로만 대했지,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인식으로 접근했는지 반성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 청년들이 하느님의 풍부한 은총의 맛을 진정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느냐 못하느냐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교리교사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리교사는 한 청소년 혹은 청년의 인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영성을 견지해야 합니다. 교리교사 한 명이 성체 앞에서 회개와 감사의 눈물을 흘릴 줄 알 때, 50~100명의 청소년 청년들이 새로운 삶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주일’은 ‘청소년 복음화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각 본당은 관할 구역 안의 모든 청소년을 사목의 대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인 청년들, 심각한 실업난에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청소년 사목의 범주를 넓혀 영·유아 사목으로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30대 신앙인은 막 시작한 혼인생활과 안정되지 않은 직장생활로 불안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도 어떤 활동적인 연령층에도 속하지 못하여 소속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주도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화의 행복 만끽하기를 

많은 젊은이가 영적 가치를 몸으로 체득하고 복음화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청소년과 청년의 제1차적 선교사는 청소년, 청년 자신이라는 「평신도 사도직 교령」(12항)의 지적처럼, 청소년, 청년 스스로도 이제 그 기대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합니다. 과거의 청소년ㆍ청년 평신도 사목이 가르치는 형식이었다면, 새로운 청소년ㆍ청년 평신도 사목은 청년이 주체적으로 나서는 형식이어야 합니다. 청소년ㆍ청년 복음화는 새로운 표현, 새로운 방법, 새로운 열정으로 해야 합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11.03 발행 [1537호] 사목영성 기고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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