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4)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4 - 평신도 사도직의 출발점, 회개 ②

강세종
2019-08-07
조회수 204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4)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4 - 평신도 사도직의 출발점, 회개 ②

회개의 시작은 주님 말씀에 맞게 행동하는 것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그 기준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그러니 예수님(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말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 행동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해야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회개를 통해 삶을 바꾸고,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실 때 우리는 삶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사랑받기 위해선 

그런데 우리는 내 행동은 그대로 둔 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합니다. 몇몇 자매들이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힘들어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 자매께 질문합니다.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그러면 대부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사랑받기만 원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행동양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 모임을 하고 있는 한 형제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월급도 많이 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는 요즘 달라졌습니다. 주방 출입을 하지 않던 이가 매일 아내를 위해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다 보니 주부습진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부인한테서 많은 사랑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부인은 항상 남편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인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남편은 분명히 부인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부인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주고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존경하고 인격적으로 대하고 사랑하는데 우리는 그분에게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도 그분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존경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을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우리를 그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우리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였습니다. 회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고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것들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그분의 제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최근 언론에 생활고로 자살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얼마전 라디오 방송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살예방센터에서는 10명의 근무 인원이 2명씩 조를 구성해 12시간씩 일하면서 하루 최대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매일 하루에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4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달이면 1200명입니다. 1년이면 1만 5000여 명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자살합니다. 전쟁을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했습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지 않겠습니까? 나만 살려고 하니까 이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 예수님 사랑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이웃의 어려운 분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소외된 이웃의 모습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평신도가 신앙적 이기주의에 빠져 자신만의 구원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삶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가짜 그리스도인, 거짓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만,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면 안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 평신도들을 사랑하십니다.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시길 원하시지만,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명도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나만 구원받고자 하는 신앙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음화는 이처럼 평신도 개개인의 회개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8.11 발행 [1526호] 사목영성 기고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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