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4) 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5 - 가난

강세종
2019-05-22 17:31
조회수 53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4) 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5 - 가난

당신 행복의 첫 번째는 재물입니까?

불교에서는 ‘무소유’를 말합니다. 세상 이치를 비롯해 모든 것이 ‘공’(空)이기에 어떤 것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도 해탈 후 첫 설법에서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그럼 그리스도교에선 소유를 어떤 관점으로 볼까요. 예수님은 재물에 탐닉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헛된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 등이 그 예입니다. 예수님은 더 나아가 지상 재물에 초연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루카 14,33; 12,33-34 참조)

가난을 실천하여라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평신도가 듣기에는 참으로 난감한 말씀입니다. 세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가 과연 가난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가난 그 자체가 선(善)일까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오히려 부자보다 더 탐욕스러울 위험은 없을까요? 물질적 가난에 찌든 사람은 삶의 고단함 때문에 하느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더 어렵지 않을까요? 실제로 예수님은 부자들을 당신 활동과 사업에서 제외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니코데모, 아리마태아의 요셉, 신심 깊은 여성들, 자캐오 등 ‘부자’들이 많았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도 자신의 배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 배로 고기를 잡았습니다.(마르 4,35-41 참조) 구약성경에서도 빈곤은 하나의 극복해야 할 악(惡)입니다.(신명 15,4 참조)

성경은 우리에게 돈 벌지 말고, 궁핍하게 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장 부자이신 하느님이 우리에게 ‘너희는 궁핍하게 살아라’고 명령하실 리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최고의 부자이신 하느님은 정작 가장 가난한 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셨습니다. 평신도에게 가난의 영성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내어주시는 하느님의 모범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게 가지고 있건, 많이 가지고 있건 돈에 대한 염려는 하느님께 향하지 못하게 합니다. 물론 돈을 벌어 자신을 잘 돌보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해서 가장 좋은 것은 또한 아닙니다. 나쁘지 않지만 첫 번째로 소중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신만 사랑하고, 자신만 돌보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됩니다. 재물에 아등바등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 좀 어려움도 있고 불편함이 있어도, 자신의 길 위에 하느님이 함께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어떤 것을 소유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그 소유물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는가, 소유를 하느님의 영광으로 돌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 소유가 행복의 전부 아냐 

무엇보다도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소유에 의해 담보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물질적 소유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욕심 없는 사람에게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만약 욕심 있는 사람에게 물질적 소유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유혹이고 마귀입니다.

재산에 대한 애착을 가질 때 만약 폭풍이 닥치면 우리는 재산을 잃을까 안절부절 해합니다. 잃을 것이 없으면 도둑이 무섭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만 생각한다면 재산이 없어져도 상관없습니다. 핵심은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며 살아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빈 그릇에 물이 담깁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덜어낼 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선물하시는 진정한 해방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덜어낼 때 우리는 몸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2019.05.26 발행 [1516호]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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