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3) 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4 - 일치

강세종
2019-05-15
조회수 156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3) 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4 - 일치

세속화 유혹 이겨내면 하느님 얼굴이 보인다

정화, 조명 다음에 이어지는 영적 성장의 단계가 일치(一致)입니다. 일치란 사전적 의미로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고 같거나 들어맞음’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내가 하나가 된다니… 언감생심(焉敢生心)입니다. 세속에서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신도로서는 생각하기도 힘든 영적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치는 일정한 영적 성장만 이룬다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팽창 

우리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완전하고 영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조명을 통해 깨닫습니다. 그럴 때 하느님은 가장 어두운 고통의 시간에서조차도 당신의 얼굴을 보는 은혜를 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치입니다. 일치에 이르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팽창하며 강화됩니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혹에 대한 주의가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갈수록, 유혹의 그늘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추위의 막바지에 꽃샘추위가 찾아옵니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일치 단계에 들어가면서 유혹이 찾아옵니다. 

결혼하기 전 우리는 사랑에 푹 빠집니다. 데이트도 하고 약혼하며 그 사랑을 확인합니다. 하지만 결혼 직전에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혼 직전에 다다르면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시원찮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시원찮은 것, 부족한 것, 나약한 것을 보듬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어쨌든, 예수님과의 일치를 위해선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듯이 유혹을 끊임없이 이겨내야 합니다. 이러한 유혹 이겨내기 작업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유혹을 이겨내도록 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은 영혼이 영적 위안과 고독함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항상 우리를 돕습니다. 이 위안은 세상의 어떤 위안보다도 강렬합니다. 낮은 영적 단계에서는 주위 사람들의 인간적 차원의 위로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느님과 일치의 단계에 들어가면 그런 인간적 위로들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진정으로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 주실 분은 오직 성령님뿐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일치는 세속의 일상 속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하나로 일치되었다고 일컬어지는 부부가 바가지 던지며 싸우는 것도 실제로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수도회 안에서도 성격이 맞지 않아 갈등하는 수도자들이 많습니다. 신부님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과 인간관계가 원만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불협화음 

하지만 하느님과의 일치는 공동체의 일치를 가능하게 합니다. 본당 공동체에서 잡음이 생기는 것은 구성원 각자가 하느님과 일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의 불일치는 공동체의 불협화음으로 이어지고, 불협화음은 불일치를 조장합니다. 이처럼 공동체가 평신도 개인의 영성을 갉아 먹는 것을 두고 우리는 소위 세속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빠진 일심동체(一心同體)는 불가능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일치해서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는 하느님 백성 공동체입니다.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한다는 차원에서 일심동체 공동체입니다. 부부 또한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기에 일심동체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 또한 가치를 함께 만들어 가기에 일심동체 공동체입니다. 

어떤 가치? 남편의 가치? 아내의 가치? 성직자가 원하는 가치? 평신도가 원하는 가치? 아닙니다. 하느님의 가치를 같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과 일치한 이들이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함께 협력하는 일치 공동체입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05.19 발행 [1515호]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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