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5)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6 - 확신과 미소

강세종
2019-05-30
조회수 3527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5)이 시대에 요구되는 평신도 영성 6 - 확신과 미소

앉으나 서나 주님 생각에 미소가 절로

A: “항상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B: “항상 하느님만 바라보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삶 또한 하느님이 우리에게 안겨주신 짐 아닙니까? 우리는 이웃 및 대인 관계도 활발히 해야 하고, 직장에 가서 일도 열심히 해야 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해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 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구의 말에 공감합니까. 저는 A의 말에 한 표입니다. B는 신앙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기에 위와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항상 하느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은 성당에 가서 온종일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평생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라는 말도 아닙니다. 모든 평신도가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라는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느님만 바라보고 사는 삶

물론 일상에서 하느님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다가는 자칫 세상살이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다른 사람에 비해 늦게 승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승진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어쨌단 말입니까? 오늘 돈을 좀 적게 벌었다고 해서 어쨌단 말입니까? 우리는 사람들 눈치 보기에 얼마나 너무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 눈치는 보지 않고 사람들 눈치 보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을 따르는 평신도는 조금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불명예스러운 것 같지만, 오해받을 수도 있지만, 누명을 받을 수 있지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세속의 야망과 욕심을 버렸을 때, 하느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찼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미소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많이 주시는데, 다른 이것저것을 가지고 있으면 뭐하겠습니까. 버리면 가벼워집니다. 편해집니다. 그래서 저절로 미소가 얼굴에 그려집니다. 미소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세상에 보여주고자 하는 그런 미소가 나옵니다. 이것이 ‘복음화’입니다.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직장에도 계시고, 학교에도 계시고, 이웃이 표정 속에서도 살아 계십니다.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길을 물어본다면 그 사람의 눈빛 속에도 하느님이 계십니다. 들에 핀 꽃 한 송이에도, 기름 잔뜩 묻은 정비공의 손에도 하느님이 계십니다. 확신 속에서 세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항상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확신과 미소 없이, 하느님 빼고 학교에 가고, 하느님 빼고 직장 일을 하고, 하느님 빼고 이웃과 대화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느님은 사막에 가야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지에만 존재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 옆에 서 계십니다. 가수 현철씨가 부른 가요가 생각납니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

항상 옆에 있겠다고 약속한 연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앉으나 서나 연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늘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앉으나 서나 하느님 생각을 하게 됩니다. 확신이 없으면 평신도는 인생을 살면서 각자의 꽃 피우기에 바쁩니다. 직장에서는 진급하려고 하고, 일터에서는 돈 많이 벌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하느님이 주시는 미소가 사라집니다. 진정한 꽃을 피우려면 하느님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한없이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시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꽃은 그 미소에 대한 확신을 자양분으로 자라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미소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그 꽃의 미소를 보고 “아름답다” 할 것입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2019.06.02 발행 [1517호] 기사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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