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7)제언 - 치국(治國) : 평신도 양성

강세종
2019-11-14
조회수 2770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7)제언 - 치국(治國) : 평신도 양성

공부하고 알아야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다

혹시 가진 재능이 보잘것없어 나 하나의 노력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음악의 음표 하나가 “나 하나로는 교향곡을 만들 수 없어”라고 말하며 포기한다면 교향곡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한 단어가 “단어 하나로는 책을 만들 수 없어”라고 희망을 접는다면 책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 각자가 “나 한 명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해서 한국 교회가 달라지지 않아”라고 말한다면 이 땅에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부터 시작되는 평신도 사도직

평신도 사도직은 나 한 명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게 변화된 평신도 한 명을 복음화 차원에서 양성해 내는 것은 평신도 사도직의 위대한 큰 발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탈렌트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탈렌트를 잘 활용한 종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

또 마더 데레사 성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돌보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하느님 사랑의 도구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복음화로 무장된 평신도를 양성하는 것은 평신도 사도직 활성화의 첫걸음입니다. 성찬과 친교의 삶을 살며 봉사와 증거로 주님의 복음을 전파했던 초대 교회의 거룩한 활력이 이 땅에 넘치게 하기 위해선 평신도 양성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평신도는 양성된 평신도들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그들은 거룩했습니다. 하지만 중세로 넘어오면서 성직자가 수도자와 동일시되면서, 평신도는 세속적이고 부정적인 이들로 취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간극은 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평신도의 적극적인 활동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 평신도를 재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없던 평신도 사도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랜 전통 속에 녹아있던 평신도 사도직을 다시 기억해낸 것입니다.

이제 우리 평신도는 양성을 바탕으로 그 전통을 다시 물려받아 새로운 활기를 교회에 불어넣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그 모범으로 안중근(토마스) 의사를 꼽습니다. 안 의사의 대사회 활동은 세례와 함께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안 의사는 목숨을 건 항일 투쟁 중에도 묵주와 기도서, 축일표 등을 지니고 다니며 신앙생활을 게을리하지 않은 투철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특히 옥중에서 쓴 자서전에서 안 의사는 ‘장생불사의 음식’으로 성체를 내세웠습니다. 성체의 신비를 민족을 구원하는 길로 역사 안에서 구체화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어떤 신학자도 해내지 못한 복음화의 토착적 성취입니다.

복음화 영성 심화해야 

이제 우리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예비 신자, 일반 신자, 평신도 지도자, 교회 기관 종사자 등 각계각층의 신자들을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기존의 프로그램들도 적절한지 그 여부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평신도 양성에서 매우 중요한 점은 평신도 복음화 영성을 심화하는 일입니다.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올바로 알아야 올바른 믿음이 생겨납니다. 평신도 중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잘 모르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르는 이유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세주이신 예수를 믿으면서도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고, 구원관이 정리되어 있지 못하니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 신자들은 세례를 받은 지 30~40년 되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신앙의 뿌리가 내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입니다. 신앙의 생활화는 여전히 희망 사항입니다. 평신도들이 부족한 부분도 있지만 공부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니까 믿음이 약하고 때론 잘못된 신앙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세계 교회에 비하면 우리 교회의 역사는 짧습니다. 앞으로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탄생한 교회 아닙니까? 평신도들이 공부를 통해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세계 유일한 교회가 한국 교회입니다. 평신도들이 공부해야 합니다. 알아야 면장을 하듯이 알아야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평신도는 세상 사람들 속에 함께 살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적 삶을 보여주고 복음선포를 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생활의 증거와 함께 명백한 선포를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믿고 받아드리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평신도는 세상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자신의 신원과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평신도가 하나둘 늘어날 때, 복음화의 물결은 이 땅 전체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공부합시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가톨릭평화신문 2019.11.17 발행 [1539호] 사목영성 기고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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